본문바로가기 (SKIP TO CONTENTS)

폭동의 원인

1992년 4월 2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흑인 폭동으로, 이날은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4명의 백인경찰관에 대한 무죄판결이 있었다. 분노를 터트린 흑인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폭력ㆍ방화ㆍ약탈ㆍ살인을 자행하였다. 이는 미국사회구조가 항상 안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폭발로서, 그간 인종차별의 시정(是正)이 진행되는 가운데, 흑인사회의 계층분화가 진행되어 중산계급화하는 흑인이 늘어나는 반면, 대도시 슬럼가(街)에 사는 극빈층 흑인도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폭동의 주(主) 대상은 한인(韓人)타운이었으며 한인교포 이재성(당시 18세)씨가 그들의 총격에 희생되기도 했는데, 이처럼 한인 타운에 대한 집중적인 공격은 한인 업소들이 성공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는데 대한 극빈층 흑인들의 좌절감에서 기인하기도 했지만, 1991년 3월 16일 한인 두순자씨가 자신을 구타한 흑인 소녀를 총기로 살해한 엠파이어 마켓 사건이 그 도화선이기도 했다. 더우기 한인 타운에 대한 흑인들의 공격에 대해 LA 경찰은 무성의하고 방관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그 피해를 가중시키기는데 일조했다.

관련사건

로드니 킹[Rodney King] 사건

1991년 3월3일, 0시30분쯤 로스엔젤레스 근교 210번 고속도로상에서 5~6대의 경찰차가 과속으로 달리던 한 대의 흰색 차를 뒤쫓은 끝에 멈춰 세워 LA경찰국 소속 4명의 백인경찰관들은 그 차를 운전하던 흑인청년 로드니 킹을 끌어내려 경찰봉과 주먹, 발길질로 구타했다. 킹은 유혈이 낭자한 채 현장에서 수갑이 채워져 경찰서로 연행되었는데, 킹은 왼쪽다리가 부러지고 얼굴도 20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큰 상처를 입었다.

로드니 킹 사건을 심의해온 시미밸리 지방법원의 배심원들은 7일간의 마라톤협의 끝에 29일 오후3시20분(현지시각) 로드니 킹을 직접 구타한 4명의 백인경찰관 중 스테이시 쿤, 테드 브리세노, 티모시 윈드등 3명에게는 무죄를 평결하고, 로렌스 파웰 한 명만 재심사를 결정했다. 배심원은 모두 12명으로, 백인이 10명이고 스페인계와 아시아인계가 1명씩이었다.

두순자씨의 엠파이어 마켓 사건

1991년 3월 16일, 사우스 LA 지역의 엠파이어 마켓 안에서 주인 두순자씨와 15세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즈양이 다투던 끝에 두씨가 할린즈양을 총으로 쏘아 숨지게 한 사건이다.

18일 경찰은 기자회견을 통해 두씨가 할린즈양을 뒤에서 쏘았다고 발표했고, 19일 검찰은 두씨를 1급 살인죄로 기소했다. 검찰 기소 후 한·흑 단체장들은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총격 파문 진화에 나섰으나 21일부터 엠파이어 마켓 앞에서는 흑인들의 시위가 시작되었으며 인근 한인타운 곳곳에서 흑인들의 보복 행패가 잇달았다. 10월 18일 유죄평결을 받은 두순자 씨에게 11월 15일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지면서 한·흑 갈등은 악화로 치닫는 계기가 되었다.

폭동의 피해

이 폭동으로 전체 피해는 사망자 55명, 부상자 2,383명, 체포된 자 1만 3379명이며, 피해 총액이 7억 1700만 달러에 이르렀으며, 이 중 한인 피해는 사망 1명, 부상 46명, 방화·약탈 2천2백여 곳, 재산피해 3억5천만달러였다.

관련 미디어자료

[다큐멘터리]한 국가의 탄생 Birth of a Nation 미국/1993/매튜 맥다니엘/60/다큐멘터리 1993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1991년 3월에 발생한 로스엔젤레스 경찰의 로드니 킹 구타사건에 대하여 내려진 1992년 4월의 무죄 평결과 이로 인하여 발생한 흑인들의 폭동을 기존의 지배적인 여론과 대중 매체의 시각에서 벗어나 흑인들의 시각에서 묘사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필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