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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운동

운동의 배경

1950년대 브라운 판결 이후 미시시피 흑인들은 참정권 획득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지만미시시피의 사회적 분위기는 1960년대에 들어와서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1954년까지 미시시피주 헌법은 ‘서류를 읽을’ 수 있는 투표인의 자질을 규정해 놓았는데 점점 많은 흑인들이 글을 읽혀나가자 ‘읽을 수 있을뿐더러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조항으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조항을 등에 업고 백인 사무원들은 흑인이 투표인 등록 시험시 멋대로 판단함으로써 흑인들의 투표인 등록을 사실상 허용치 않았다.

운동의 전개

1962년, 미시시피에 있는 몇몇 지방 민권단체들은 SNCC, NAACP, CORE, SCLC와 협력하여 연방조직평의회(Council of Federated Organization, COFO)를 구성하였고, 1963년 모의 선거를 계획·실시하여, 모의 선거일에는 투표인 등록을 한 수의 거의 4배인 80,000명의 사람들이 길거리나 이발소, 미장원에 설치된 테이블에서 투표하였다.
자유투표의 성공으로 COFO는 다가오는 여름 전국에서 수 백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참정권 계획을 실시하기로 결심하고 “Freedom Summer”라 불리는 미시시피 전역에 걸친 대규모 투표인 등록작업을 계획하였다. 수천명의 학생들은 미시시피 전역에 걸쳐 자유학교를 설립하고 새로운 미시시피 자유민주당을 위해 집집마다 투표인 등록을 요청하였고 여름 내 각지에서 특히 북서부에서 의사들이 참가하여 흑인들을 위한 무료 건강 진료소인 자유 병원(Freedom Clinic)을 설치·운영하였다.
한편, 1964년 6월 20일 200명의 Freedom Summer 지원자들이 오하이오 옥스퍼드를 출발해 미시시피로 향한 다음 날, 두 명의 백인과 한 명의 흑인 민권운동가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져 전국의 매스컴은 연일 이 사건에 초점을 맞추었고, 미시시피에서는 방화 등 폭력이 잇달아 발생하기도 하였다.

운동의 전개

미시시피 자유민주당의 결성은 Freedom Summer의 가장 강력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합법적 정치정당으로서의 미시시피 자유민주당 결성은 흑인들을 배제한 기존 미시시피 민주당의 주도권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8월 말까지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가입과정에서 체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8,000여명의 흑인들이 자유민주당에 가입했다.

8월 6일 잭슨시에서 2,5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자유민주당은 전당대회를 개최하고 그들의 전략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자유민주당은 1964년 정치적 도전에서 실패하였다

운동 이후

Freedom Summer 계획은 지원자들이 떠난 후에도 계속되었고 존슨 행정부는 미시시피 교외에 건강 진료소와 학교 프로그램을 위한 기금을 제공하였다.
한편 백인과의 협력을 통한 평화적 개선의 이상에 환멸은 느낀 흑인들은 인종문제에 새로운 접근 방법을 모색하였으며, 이후 카 마이클과 같이 블랙 파워를 주장하는 성향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관련 미디어 자료
[영화]Mississippi Burning (1988)
Alan Parker 감독/Gene Hackman, Willem Dafoe 주연
1964년 미시시피주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세 명의 흑인인권협회소속 학생이 살해되었다 -을 소재로 한 영화로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