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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좌(Sit-ins) 운동

운동의 발단

1960년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그린스보로에 있는 흑인 대학신입생 4명은 백인들만이 식사하는 시내 울워스 식당에 가기로 결의하였다. 그들의 식사 주문은 거절당하였으며, 그들이 식당을 떠나려 하지 않자 식당은 문을 닫아 버렸다. 그 다음날 그들은 다시 그 식당으로 갔고, 매일같이 그 일이 반복되자 다른 흑인들도 그 식당에 가서 아무말없이 앉아 있었다.

운동의 전개

울워스 식당에서의 연좌 운동이 시작된 지 2주일만에 남부 5개 주 15개 도시로 급속히 번져 갔다.
1960년 4월 21일, 45명의 학생들이 권리 침해 및 불법침입으로 구속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여러 상점을 상대로 거대한 불매운동이 실시되었고 결국 그린스보로의 백인들은 흑인들의 요구를 수락하였다. 1960년 4월에 이르러 이 운동은 78개 남부도시와 주변 흑인 공동체로 퍼져 나가 2,000여명의 학생들이 체포되었고 1년 후에는 그 수가 2배가 되었다.
학생들의 연좌농성이 증가하자 내쉬빌에서는 인종주의자들과의 긴장이 증대되어 폭력사태가 발생하였다. 5월초 런치 카운터가 첫 번째로 분리를 철폐한다고 결정했을 때까지 수백 명의 학생들이 구속되었고 수천의 학생들이 시위에 참가하였다. 1960년 10월, 루터 킹과 36명의 학생들이 백화점에서 연좌 농성을 하던 중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이에 항의하는 더 많은 흑인 시위대가 운집하였다.

운동의 전개

이 와중에 57명이 구속되었고, 구속된 이들이 보석으로 출감하기보다는 감옥에 남아있기로 결정함에 따라 학생들이 아틀란타 흑인 공동체의 지원을 받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961년에 들어서도 농성과 체포의 연속적인 사건이 발생하였고, 결국 1961년 9월 27일 아틀란타에서도 흑백분리가 철폐되기 시작했지만, 흑백분리가 깊게 자리한 몇몇 남부지역에서는 흑인들이 괄목할 만한 승리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운동의 성과

기성세대 흑인들을 고무시켰고 흑인 공동체로의 진입은 학생들이 당면하고 있는 점차 증가하는 인종주의자들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주고 미국 흑인들에게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며 흑인 정치 발달의 새로운 단계의 시작이 되었다.

운동의 한계

연좌운동을 주도했던 층은 대부분 학생들로서 이들은 그들 공동체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계층 출신이었고 전국의 광범위한 중산층과 연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전개한 연좌운동들은 경제적인 평등이라는 부분을 도외시한 채, 법 앞에서의 평등 실현만을 기본적인 목표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