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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메리 버스승차거부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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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의 발단

1955년 12월 1일, 42세의 흑인 여자 재봉사 로자 파크스는 법과 관습에 의하여 백인 전용으로 되어 있는 구역인 버스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뒷자리로 옮겨가라는 운전사의 명령을 거부했고, 이에 그녀는 흑백 인종분리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운동의 전개

알라배마 NAACP의 의장인 닉슨(E.D.Nixon)은 이 사건을 흑인세력의 규합과 대중 시위를 통한 압력의 기회로 생각, 파업과 버스 승차거부를 주장하였으며, 이 운동에서 확실한 지도력과 특정한 목표가 없는 것에 대해 우려해 여러 흑인교회 목사들과 다른 승차거부운동의 지도자들과 함께 몽고메리 개선협회(Montgomery Improvement Association. MIA)를 구성, 마틴 루터 킹을 의장으로 추천하였다.
전체 흑인들이 승차거부에 동참한 지 3일 후, 킹은 몽고메리의 시장 게일(W.A Gayle)과 그의 보좌관 및 버스회사 대표들을 만났으나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백인들은 킹의 제안을 무시하였다.
1956년 1월말, 게일 시장은 강경책을 선언하였고 곧이어 흑인들을 탄압하는 공식적인 정책이 시행되었다. 승차거부로 인하여 흑인들은 직장을 잃게 되었고 다른 많은 흑인들은 해고의 위협을 받았다. 또 많은 이들이 속도위반으로 조작되어 벌금형에 취해졌는데, 이 때 마틴 루터 킹 목사 또한 속도위반으로 구속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같은 해 6월 4일, 연방 지방 법원은 명령을 통하여 버스에서 분리를 지속하려는 시당국에 대한 MIA의 소송에서 그러한 행위는 위헌이라고 규정했고, 이에 시 당국은 대법원에 즉시 항소하였지만, 결국 1956년 11월13일 대법원은 “미합중국 대법원은 오늘 알라배마 주와 지역법이 요구하는 버스에서의 분리를 비합법적이라는 판결을 내린 연방 지방 법원의 결정을 지지한다.”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381일 간의 투쟁에서 흑인들은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운동의 성과

몽고메리의 버스 승차거부 운동은 흑인 다수에 의한 비폭력 직접행동의 사상이 발전하였고 흑인 공동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흑인들은 자신들이 무력하고 왜소하다는 느낌을 추방하기 시작했으며, 버스 승차거부의 승리는 흑인 투쟁을 법정에서 거리로 가속화시켰다.
이처럼 몽고메리의 버스 승차거부 운동이 낳은 가장 큰 성과는 흑인들이 남부지역에서 그들의 조직된 시위를 통하여 그들의 원하는 바를 얻어낼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앞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흑인 대중시위에 있어 모범이 되었고 흑인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획득을 향한 노력에 용기를 심어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주목할 만한 사실은 흑인 민권운동에 있어 그들 운동의 구심점이 되는 한 인물, 킹 목사의 등장이라 할 수 있겠다.

운동의 한계

이러한 버스승차 거부 운동은 몽고메리라는 지역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못했고 몽고메리에서 실제적으로 피부에 와 닿은 차별의 철폐에는 한계가 있었다. 비록 짐 크로 법이 몽고메리의 버스에서 더 이상 법적인 제재를 가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흑백분리는 호텔, 런치카운터, 화장실과 고용에서 여전히 지속되었으며 몽고메리는 아직도 흑백이 분리된 마을로 남아있었다.

* 참고 :
1. 박상두, 1993. 『미국 흑인들의 민권운동』, 인하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외국사전공) 석사학위논문.
2. http://my.dreamwiz.com/wepia/